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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실버는 아름다울까?
작성자 | 불루데스크 201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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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는 아름다울까?

 

 

2034년 12월 23일. 토머스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가 세상을 뜬지 꼭 200년이 지났다. 가족사진을 들여다보던 카푸친 씨는 지구촌이 인구 폭발로 재앙을 맞으리라던 2세기 전 영국 정치경제학자의 예언이 얼마나 크게 빗나갔는지 생각하며 씁쓸히 웃는다. 지금 지구촌은 인구 감소의 충격을 두려워하고 있다. 카푸친 씨 가족사진 속에는 피부색이 다른 사람과 애완동물과 로봇이 함께 앉아 있다.

 

 

로봇과 함께 살아야 할 카푸친 씨

2034년 정치 지형은 20여 년 전과 완전히 딴판이다. 모든 정파들은 ‘실버세대 연합’과 ‘미래세대 연합’으로 갈라졌다. 세대 갈등은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젊은 세대는 자기들 미래를 실버세대가 훔쳐갔다고 비난한다. 무절제한 소비를 계속한 앞 세대의 빚을 자기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젊은 세대는 노인들에게 연금을 주기 위해 너무 많은 부담금을 내고 있지만 정작 자기들은 연금을 받을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 더 이상 세대 간 불공평한 부의 이전이 계속되지 않도록 하려면 실버  연합이 집권해 장로정치(gerontocracy) 체제가 확립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젊은 세대가 미래 성장 잠재력을 높이기 위한 교육을 비롯한 인적자본(human capital) 투자를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 반해 실버세대는 노인층에 대한 의료혜택을 더 확대하라고 요구한다. 실버세대는 자기들의 피와 땀으로 한국 경제를 이만큼 일궈 놓았는데 젊은 세대가 그 고마움을 모른다고 섭섭해한다.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자 두 세대는 연금 개혁과 정년 연장 문제를 둘러싸고 날카롭게 부딪쳤다. 정년과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시점을 기대수명에 연동시키는 방안에 대해 세대 간 이해가 극명하게 엇갈렸기 때문이다. 자녀 수에 따라 투표권을 늘려주는 급진적인 아이디어에 대해서도 뜨거운 공방이 벌어졌다.


렘브란트의 '노인의 옆모습'

 

아이를 많이 낳을수록 국가 발전에 더 큰 기여를 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아직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미래세대의 이익을 부모들이 대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과 그렇게 하면 불임 부부나 경제 사정으로 출산이 어려운 이들을 부당하게 차별한다는 주장이 엇갈렸다. 임신의 고통을 피하고 일하는 즐거움을 얻으려는 여성이 갈수록 늘어나자 정부는 ‘시험관아기 지원법’을 만들었다.


카푸친 씨는 외로움을 달래주고 귀찮은 일들을 도와줄 매력적인 로봇 하나를 새 식구로 맞으려 한다. 자신의 머리가 완전히 은빛이 되면 더 외롭고 가난하게 될 것 같은 예감에 침울해진다. (한국 사회는 과연 이런 모습으로 바뀔까? 20여 년 후 이 글을 다시 보면 댓글을 달아주기 바란다.)

 

 

맬서스가 보지 못한 미래

맬서스는 1798년부터 1826년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발표한 인구론(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에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데 비해 식량 공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 지구촌은 재앙을 맞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구 증가는 전쟁이나 기근, 또는 전염병 때문에 억제될 수도 있고(positive checks), 출산율을 낮춰 억제할 수도 있다(preventive checks).

 

맬서스는 임금 수준이 높아질수록 노동자들은 더 많은 아이들을 낳을 것이라고 봤다. 정부가 빈곤층을 도와주는 건 가난한 이들이 더 많은 아이를 낳도록 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가난한 노동자들은 결혼을 미룰수록 더 잘 살 수 있으며 이들에게는 출산을 줄이는 ‘도덕적 절제(moral restraint)’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유럽 몇몇 나라에는 빈곤층의 결혼을 금지하는 칙령이 있었다.)

 

클림트의 '여성의 세 시기'


하지만 인구 증가를 시한폭탄으로 규정한 그의 이론은 타이밍을 잘못 잡은 것이었다. 과거와 현재의 추세만 보고 하는 미래 예측이 흔히 그러하듯 그의 예언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다른 모든 동물들은 먹을 거리가 풍부할수록 개체수가 늘어나지만 사람들은 부유해질수록 아이를 적게 낳았다.


출산율(fertility rate)은 여성 한 명이 평생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 수다. 한 해 동안 태어난 아이를 인구 수로 나눈 비율인 출생률(birth rate)과는 다른 개념이다. 지구촌 여성의 출산율은 1970~1975년 4.32명이었으나 2005~2010년에는 2.56명으로 줄었다. 2010년 지구촌의 절반은 대체출산율(replacement level of fertility)인 2.1을 밑돌게 될 것으로 추정된다. (대체출산율은 현재 인구를 유지할 수 있는 매직 넘버다. 물론 어린이 사망률이 높은 나라에서는 여성 한 사람이 3명 이상을 낳아야 인구가 유지될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출산율과 소득수준의 상관관계를 보여주었다. 보통 1인당 연 평균 소득이 1,000~2,000달러가 되면 출산율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소득이4,000~1만 달러가 되면 출산율은 대체출산율 수준으로 떨어진다. 그 후에는 한동안 대체출산율 아래서 머물다 소득이 더욱 크게 늘고 정부가 적극적인 출산 지원책을 펴면 출산율이 다시 고개를 든다.


지나치게 높았던 출산율이 적절한 수준으로 떨어지면 어린이와 노인층에 비해 노동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아진다. 출산율이 너무 높지도 너무 낮지도 않은 골디락스(Goldilocks) 기간을 맞게 되는 것이다. 이 때는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부담도 노인들을 부양해야 하는 짐도 너무 무겁지 않다. 출산율이 떨어지면 여성들이 바깥 일을 할 수 있고, 저축할 여력이 생기면서 투자도 더 많이 할 수 있다. 1인당 축적된 자본의 양도 늘어난다. 유럽 경제는 1945~1965년 베이비붐(baby boom) 이후 이런 시기를 맞아 30년 동안 성장했다. 이제 아시아와 남미가 그런 단계에 있다.


보통 중위연령이 20세 아래인 경제는 어린이들을 키우는 데, 중위연령(median age)이 40세 이상인 경제는 노인을 부양하는 데 많은 힘을 쏟아야 한다. 이는 글로벌 투자자들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인구가 젊은 경제에 투자해야 높은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는 경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는 나라로 꼽힌다. 유엔 추계(2008년 World Population Prospects)에 따르면 2009년 7월 현재 전 세계 인구 68억 명을 나이 순으로 한 줄로 세웠을 때 정 중간에 서게 되는 이는 28.9세다. 이 나이를 중위연령이라고 한다. 통계청 추계(2006년) 결과 한국 인구 4,900만 명의 중위연령은 37.3세다.


2050년 세계 인구는 91억 명으로 늘어나며 중위연령은 38.4세가 된다. 그때까지 한국의 인구는 4,200만 명으로 줄어들고 중위연령은 56.7세로 높아진다. (한국의 인구는 2018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한다. 인구 순위는 2009년 세계 26위에서 2050년 46위로 떨어진다.)


한국의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노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11%에서 2050년 38.2%로 늘어난다. 80세 이상 고령자도 14.5%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생산활동을 하는 연령대인 15~64세 인구 100명 당 65세 이상 노인 수(노년부양비)는 같은 기간 15명에서 72명으로 급격히 증가한다. (지금은 생산인구 6.6명이 노인 한 사람을 부양하지만 40년 후에는 1.4명이 한 사람을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의 노년부양비는 세계 평균(25명)의 세 배 가까운 수준이 된다.

 


한국은 지구촌에서 가장 아이를 적게 낳는 나라 중 하나다. 유엔 추계에 따르면 영국에서 출산율이 5명에서 2명으로 떨어지는 데 130년(1800~1930년)이 걸렸다. 한국에서는 20년(1965~1985년)밖에 안 걸렸다. 경제개발 초기인 1970년 우리나라 여성 한 사람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는 4.53명이었다. 출산율은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대체출산율을 웃돌았으나 2009년에는 1.15명으로 떨어졌다. 여성들의 결혼은 갈수록 늦어지고 있다. 1980년까지만 해도 20대 후반 여성 가운데 미혼자는 14%에 그쳤으나 25년 후 이 비율은 59%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30대 초반 여성의 미혼자 비율은 2%에서 19%로 높아졌다.


한국인들의 수명은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1970년에 태어난 남성의 기대수명은 61.9세였다. 이에 비해 2008년 태어난 남자 아기는 80.1세까지 살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기간 여성의 기대수명은 65.6세에서 83.3세로 늘어났다. 2005~2010년 지구촌 사람들의 기대수명은 67.6세인데 비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79.1세에 이른다. 세계에서 가장 아이를 적게 낳고 가장 빨리 늙어가는 한국인들은 장수를 축복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열정을 다 써버린 이들보다 더 늙은 사람은 없다

인구 폭발에 따른 인류의 암울한 미래를 그린 맬서스의 예언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번에는 저출산의 함정(low-fertility trap)에 대한 불길한 예언들이 보기 좋게 빗나가기를 모두가 바라고 있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제레미 시겔(Jeremy Siegel) 교수는 인구 고령화라는 시한폭탄이 터지면 무엇보다 자산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제 막 은퇴하기 시작한 베이비붐 세대가 모아두었던 자산을 본격적으로 팔게 되면 다음 세대가 그 매물을 지금과 같은 가격에 다 받아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겔 교수는 개발도상국의 젊은 세대가 그 충격을 피하도록 해 줄 것이라고 밝혔다. 예컨대 갈수록 부유해지는 중국의 젊은이들이 노후자금이 필요한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가 파는 주식을 소화해 줄 것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고령화 사회의 고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장수 리스크(longevity risk)는 정글 경제를 살아가는 모두를 짓누르고 있다. 연금재정 고갈은 세대 간 갈등을 더욱 증폭시킬 것이다. 농경사회에서는 가계 안정을 위한 보험(insurance)과 같은 구실을 했던 자녀들이 지나치게 비싼 양육비 때문에 가계 불안을 초래하는 부채(liability)가 되고 있다. (물론 자녀들이 부모에게 줄 수 있는 한없는 기쁨을 생각하면 이 셈법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고흐의 '슬픔에 잠긴 노인(영겁의 문턱에서)'

 

인구가 줄어들면 경제는 끝없는 침체의 늪에 빠져들 수 있다. 한 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은 1인당 부가가치를 인구 수로 곱한 값이다. GDP가 조금이라도 늘어나도록 하려면 인구가 줄어드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 그러자면 과학기술과 인적자본 투자를 늘려 생산성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다른 나라에서 젊은 인재를 적극적으로 수입하고 사람 대신 로봇이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더 오래 일해야 한다. 새로운 문제를 풀고 낯선 상황에 재빨리 적응할 수 있는 유동성 지능(fluid intelligence)은 중년 이후 감퇴하더라도 습득한 지식과 경험, 언어 능력을 바탕으로 한 결정성 지능(crystallized intelligence)은 계속해서 활용할 수 있다. 물론 임금 노동에만 한정할 필요는 없다. 사회 봉사나 가사를 통해서도 노년을 더 빛나게 할 수 있다. (이런 일들의 경제적 가치를 제대로 셈해야 한다.)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우리가 80세에 태어나서 18세가 될 때까지 조금씩 젊어진다면 무한히 행복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다는 걸 잘 알기에 “주름살은 단지 미소가 머물던 자리를 알려주는 것(Wrinkles should merely indicate where smiles have been)”이라는 위안의 말도 남겼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Henry David Thoreau)는 “열정을 다 써버린 이들만큼 늙은 사람은 없다(None are so old as those who have outlived enthusiasm)”고 했다.
우리는 과연 노년을 아름다운 은빛으로 만들 수 있을까?

 

 

 

장경덕
글 장경덕 / 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