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전염병·전쟁 직후 출생자들, 학력·소득·건강 수준 낮은 경향
현대사회 기술 발전으로 물적 자원 복구는 쉬워졌지만 인간 신체·정신 치료는 한계조선비즈|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입력2016.05.02.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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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살면서 다양한 형태의 재난을 겪습니다. 작은 교통사고나 화재처럼 몇몇 개인이 겪는 불행도 있지만, 지진, 화산 폭발, 태풍, 쓰나미, 전염병, 전쟁 등은 사회 전체에 충격을 줍니다. 최근 일본, 에콰도르 등에서 일어난 지진, 브라질을 중심으로 전 세계로 확산 중인 지카 바이러스 등이 대형 재난의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대형 재난은 재산 피해를 가져올 뿐 아니라, 몸을 상하게 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목숨을 앗아갑니다. 인간은 예로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이러한 대규모 재난들에 대비해 왔습니다. 개인 차원에서는 저축을 통해 기근에 대비했습니다. 외적의 침입이라는 재난으로부터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국가라는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서구 사회에서는 화재나 배의 난파 등에 대비해서 다양한 보험이 발달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상평창이나 의창 같은 구휼 제도를 만들어 재난으로 인한 식량 부족에 대응했습니다.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경제학자들은 재난의 예방 및 대응뿐 아니라 재난이 경제에 미치는 장단기적 영향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재난으로 인한 파괴로부터 회복이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얼마만큼 그리고 얼마나 빨리 이루어지는가, 가능하지 않다면 어떤 이유 때문인가 등을 연구하였습니다. 최근 학계에서 진행된 일련의 연구들은 이 문제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양상을 보여줍니다.
◇재난으로 파괴된 건물, 4~5년이면 복구
먼저 전쟁으로 인한 파괴를 사례로 들어 건물·설비 등 물적 자산이 어떻게 회복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전쟁은 인류 역사에 걸쳐 늘 존재하였던 재난이었습니다. 그런데 20세기 들어 전쟁에 폭격을 통한 대규모 파괴라는 새로운 양상이 더해집니다.
폭격 가운데서도 가장 악명 높았던 것은 베트남전의 폭격입니다. 베트남전 당시 미군이 쏟아부은 폭탄의 양은 20세기 전쟁을 통틀어 가장 많은 양이었습니다. 한국전쟁 때 폭격보다 2~3배쯤 많았다고 합니다.
UC버클리의 에드워드 미겔(Miguel) 교수와 제라르 롤랑(Roland) 교수는 폭격으로 인한 파괴의 중장기적 영향을 분석했습니다. 미군 자료를 이용하여 전쟁 기간 지역별 폭격량을 파악한 뒤, 40년이 지난 2000년대에 각 지역의 경제 상황을 비교한 것이지요. 연구 결과는 놀랍게도 폭격량은 각 지역의 장기 발전에 별다른 차이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지표를 검토해본 결과, 2000년대 각 지역의 경제 발전 정도는 베트남전 당시의 폭격량과는 무관하였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흥미롭게도 2000년대 들어 이루어진 폭격에 대한 일련의 경제학 연구에서 일관되게 나타납니다. 컬럼비아대의 도널드 데이비스(Davis) 교수와 데이비드 와인스타인(Weinstein) 교수는 2차대전 때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원폭이 지역 경제의 장기 발전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였습니다. 폭격 연구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이 연구는 폭격이 이루어진 도시가 일정 시간이 흐르면 원상태로 돌아온다는 결과를 처음으로 제시하였습니다. 아울러 2차대전 당시 연합군의 독일 폭격에 대한 스티븐 브랙먼 (Brakman) 흐로닝언대 교수 등의 연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폭격에 대한 연구들, 나아가 1·2차 세계대전 등 근대사회 전쟁에 대한 연구들은 전후 복구가 4~5년 정도면 대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한국전쟁도 예외가 아닙니다. 여러 가지 지표를 살펴보면 남한과 북한 모두 1958년경에는 전전(戰前)의 경제 수준으로 회복합니다.
◇건강 훼손은 평생 경제 생활에 영향
그런데 재난이 인간의 신체나 정신에 가한 충격은 사뭇 다릅니다. 1918년 스페인 독감의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차대전이 막바지로 접어들던 1918년에 전염병인 스페인 독감이 창궐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 가장 악명 높았던 이 독감은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독감과 같은 전염병은 일시적인 고통만을 안겨줄 수도 있지만, 평생에 걸쳐 후유증이 지속될 수도 있습니다. 더글러스 아몬드(Almond) 컬럼비아대 교수는 이 문제를 알아보기 위해 1918년 독감 유행 당시 미국에서 태아 상태였던 사람들, 즉 1919년 상반기에 태어난 사람들의 삶을 분석하였습니다.
아몬드는 소득, 학업 성취, 건강 등 여러 지표를 분석하였는데, 모든 영역에서 1918년 태아였던 사람들은 인접한 다른 연도의 출생자들보다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인의 학력이 장기적으로 높아지는 추세임에도 1919년생만은 추세에서 벗어나 낮은 수준을 보여줬습니다. 엄청난 질병에 노출되는 불운을 겪게 되면, 평생에 걸쳐 그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철희 서울대 교수가 한국전쟁의 영향을 분석했습니다. 이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전쟁이 발발하고 가장 전투가 격렬하게 이루어지던 1950년에 태아 상태였던 사람들의 장기적인 건강 상태는 다른 출생 연도의 사람들보다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태아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전쟁 등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이나 부상 혹은 식량 부족 등이 초래하는 건강 손실은 평생토록 그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 미국 남북전쟁 이후 퇴역군인의 삶을 분석한 이철희 교수의 연구는 전쟁으로 신체적, 정신적 상해를 받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 낮은 소득과 낮은 건강 상태에 빠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재난으로 인한 충격의 장기적 영향에 대한 이상의 연구들은 충격으로부터의 회복이 인적 자본과 물적 자본 영역에 따라 매우 다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현대사회가 되면서 기술이 발달하고, 자본과 인력의 지역 간 이동이 쉬워지면서 물적 파괴의 회복은 상대적으로 손쉽게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의료기술은 인간의 신체나 정신에 남겨진 상처를 완전하게 치료할 만큼 발전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영향은 오랫동안 지속되는 듯합니다. 이러한 결과들은 재난이라는 충격이 왔을 때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재난을 예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정책적 함의도 크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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