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연구원, 17년치 실직자료 분석 재취업 빠를수록 임금 회복 빨라 실직자 10명 중 7명은 실직 반복 생활비는 안 줄어들고 빚만 늘어
이훈서(51·가명)씨는 2014년 1월 14년간 다니던 증권사에서 구조조정의 찬바람을 맞았다. 연봉이 많을 때는 1억3000만원에 달하기도 했다. 회사를 떠날 땐 집 한 채뿐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투자에 실패하며 금융자산은 거의 없는 상태였다.
실직하던 해엔 회사가 위로금으로 준 돈으로 버텼다. 2015년에 자전거 대리점에서 3개월 정도 일하고 받은 월 180만원이 번 돈의 전부였다. 생활비를 대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두 아이의 교육비로만 월 200만원 가까이 들었다. 이씨는 아파트를 줄여 이사했다. 생활비 감당이 안 됐다. 빚을 냈다. 현재 그의 빚은 3000만원 정도다. 지난해 말부터 그는 보험설계 교육을 받고 올해 2월 설계사로 취업했다. 아직 초보라 월수입은 200만원 정도다.
이씨처럼 타의로 직장을 떠난 회사원이 예전 직장 수준으로 소득을 회복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 결과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직한 근로자는 오히려 빚이 늘어 가계부실로 빈곤 상황에 빠질 위험에 노출됐다.
다만 재취업 시점이 빠를수록 실직 전의 임금 수준을 회복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실직자가 재취업을 빨리 할 수 있게끔 제도적·법적 대책을 마련해야 ‘실직-가계부실-빈곤’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게 연구의 결론이다.
이지은 한국노동연구원 전문위원은 1999년부터 2015년까지 17년치 노동패널 자료를 바탕으로 실직자의 소득과 지출, 부채 변화 등을 연구했다. 분석 기간 동안 20세 이상 60세 미만 근로자 가운데 매년 10명 중 2명꼴로 실직을 경험했다. 실직자 10명 중 7명은 실직을 반복했다.
실직은 곧바로 임금의 급격한 하락으로 이어졌다. 명목소득을 기준으로 계산한 실질 월평균 임금이 실직 첫해 자발적 실직자는 34%, 비자발적 실직자는 53% 줄었다. 이듬해엔 각각 21.4%, 26.4% 감소하고, 4년 뒤엔 각각 9.1%, 18.9% 줄었다.
실직 전 직장에서 월 300만원을 받던 근로자가 구조조정 파고에 휩쓸려 회사를 떠날 경우 1년 뒤 220만8000원을, 4년 뒤 243만3000원을 받는 데 그친다는 얘기다.
실직한 뒤에도 매년 생활비는 늘었다. 비자발적 실직자도 생활비를 첫해에만 3% 줄일 뿐이었다.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빚을 내는 경향이 뚜렷했다. 실직과 동시에 부채가 100만원가량 늘었다.
이처럼 가계부실이 지속되면 가족 중 다른 사람이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전체 가계소득을 떠받히기 마련이다. 김찬수(58)씨가 그런 경우다. 그는 건설 설비 분야에서 30년 일하고 2011년 건설회사를 나왔다. 이후 임시 일자리를 구해 월 300만원 정도 벌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일자리가 없었다. 부인이 놀이공원 식당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부인의 월급은 120만원 정도다.
그렇다고 실직이 꼭 나쁜 쪽으로만 흐르는 건 아니다. 준비된 사람에겐 반전의 기회가 됐다. 재취업 시기에서 명암이 갈렸다. 실직한 그해에 취업해 계속 직장에 다닌 사람은 실업 1년 전 175만원에서 4년 후 202만원으로 15.4%나 임금이 뛰었다.
그러나 취업하지 못하거나 취업과 실업을 반복한 사람은 실직과 동시에 63.5%나 임금이 떨어진 뒤 회복하지 못했다.
이지은 전문위원은 “개인의 실직은 단기적인 임금손실의 문제가 아니라 상당기간 지속되며 가계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며 “재취업 시기를 앞당기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이 실직자 가정을 지탱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