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에서 상처 잘 꿰매주는 이발소가 어디인가요?” “아파트 없어도 민영보험 가입자면 일등신랑” “간단한 수술도구, 봉합연습용 삼겹살 불티나게 팔려…” 네티즌들이 의료보험이 민영화 됐을 때의 가상현실을 재치 있게 엮어 올린 게시물들이다.
지난 9일 치러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이 때문에 네티즌들은 이명박 정부가 의지를 표명한 ‘당연지정제 완화’와 ‘민간의료보험 활성화’가 현실로 다가오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질병정보를 민간보험사와 공유하고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의료기관이 건강보험 가입자에 대해 정당한 이유없이 진료를 거부하지 못하도록 한 제도)를 완화하는 것이다. 많은 네티즌들과 보건의료시민단체는 “의료 서비스의 양극화를 조장할 것”이라며 민간의료보험을 크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네티즌들의 의료보험 민영화에 대한 이 같은 관심은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Sikco)’의 국내 개봉으로 더욱 확산되고 있다. ‘환자’ 또는 ‘앓던’ 이라는 뜻의 속어인 '식코'는 '의료보험에 얽힌 당신이 알아야 할 충격적 진실'이라는 홍보 문구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국의 민영의료보험 체계의 허점과 문제점 그리고 대안을 내놓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 '식코'를 보면 민영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미국의 한 노동자는 손가락이 두 개나 잘리는 수난을 겪었지만 수천만원이나 하는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접합수술을 포기하고 만다. 손가락 봉합수술 하는 데 미국에서는 한 손가락에 수만달러가 들어 간다고 한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5손가락 모두를 봉합해도 무료라는 것을 보여주며 미국의 민영의료보험의 문제점을 영화는 지적하고 있다. 영화를 봤다는 한 네티즌은 “민영의료보험이 도입되면 비싼 병원비 때문에 자신이 직접 치료하는 국민이 늘어날 것”이며 “이에 따른 부작용도 상당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네티즌들의 이같은 우려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영화 ‘식코’를 관람할 것을 요구하는 청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청원을 발의한 한 네티즌은 “미국식 의료보험 제도를 추진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가 있다”면서 이명박 대통령과 새로 당선된 국회의원들에게 영화 '식코'를 관람해 달라고 제안했다. 이 청원에는 오늘 오후 5시 현재 6355명의 네티즌들이 "영화를 보면 의료보험에 대한 인식이 바뀐다” "정책 실무자들이 꼭 봐야 하는 영화다"며 청원을 지지하고 있다.
마이클 무어는 영화에서 미국과 프랑스의 의료시스템을 비교하며 “뭐가 잘못 됐기에 우리는 저러지 못할까”라고 한탄했다. 이에 대해 한 네티즌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프랑스는 정부와 정치인들이 국민을 두려워하고, 미국은 그렇지 않다”며 “잘못된 것이 있고, 불만이 있을 때 프랑스 국민들은 모여서 항의를 했고, 미국인들은 그렇지 않았다”고 나름의 분석을 제시했다.
이명박 정부가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추진하려는 배경은 나름대로 이해 못할 바 아니다.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87%가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에 불만이 있다’고 응답한 것만 봐도 건강보험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민영화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마이다스의 손’이라는 발상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이 필요한지’를 묻는 질문에는 85%가 ‘필요하다’고 답했고, 이 중 63%는 ‘필요하지만 부분적인 개정이 요구된다’고 응답했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건강보험의 문제점은 지적하지만 여전히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바로 이것이 여론인 것이다. 네티즌들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정책을 입안하려는 여당과 정부를 향해 영화 ‘식코’ 만이라도 먼저 관람해 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엄호동|경향신문 미디어전략연구소 연구위원>